![happily ever after 3446727795 4ce5c97008 [UP] 헤어짐에 관한 교과서](http://blancat.kr/wp-content/uploads/2009/08/3446727795_4ce5c97008.jpg)
... and they lived happily ever after
백설공주, 신데렐라, 잠자는 숲속의 공주 이하 인어공주를 제외한 공주(아. 신데렐라는 공주가 아니네요^^;)들은 왕자를 만나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이야기의 끝. 그들은 그 후에 어떻게 살았을까요. 젊고 생기있는 얼굴만 보고 반해서 결혼한 그들이 과연 늙고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서로 사랑하기는 했는지. 아이는 몇이나 낳았을지, 아니면 어느 한 쪽이 불임이라서 평생 아이를 갖지 못했는지. 죽을 때까지 어진 왕으로 살았을지, 어느 날 갑자기 반란이 일어나 왕위에서 물러났을지. 그들의 왕자와 공주는 과연 말을 잘 들었을지. 더럽게 말 안 듣는 자식 뒷바라지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로 부부싸움은 하지 않았는지. 아무도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저 상상할 수밖에요.
![cinderella cinderella [UP] 헤어짐에 관한 교과서](http://blancat.kr/wp-content/uploads/2009/08/cinderella.jpg)
그런데 말입니다. 한 가지는 확실한 사실이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어느 한 쪽은 먼저 세상을 떠났을 겁니다. 그들이 마지막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끔찍하게 서로를 사랑했든, 일찌감치 식어버린 사랑 대신 미운 정으로 살고 있었든,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겠지요. 어쨌든 중요한 것은 핵전쟁이 나고, 불의의 사고를 당해서 갑자기 둘이 같이 비명횡사하지 않는 이상, 그들은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죽음. 사실, 저는 ‘죽음’이라는 이 땅 위에 살아있는 피조물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그 관문에 대해서 별로 익숙하지 않습니다. 저는 죽음을 목격한 적이 거의 없거든요. 제 주변 분들 중에서 돌아가신 분은 평생 얼굴을 스무 번도 못 본 큰 고모부와, 평생 볼 일이 거의 없었던 증조할머니뿐입니다. 친할머니, 친할아버지는 제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돌아가셨고, 심지어는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조차 죽기 전에 어디론가 멀리 친구가 많은 집으로 떠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인지 저에게 죽음이란 끔찍한 미지와 공포의 대상입니다. 항상 마음만 먹으면 들을 수 있었던 그 사람의 목소리를 다시는 들을 수 없게 되다니! 저에게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 일이예요.
그런 제가 몇 년인가 전부터 죽는다는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생겼습니다. 아버지께서 많이 편찮으셔서 처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휩싸인 이후입니다. (지금은 너무너무너무너무 건강하다 못해 팔팔하시지만 -ㅁ-;;) 언제 어떻게 다가올 지 모를 때 가장 공포스럽다고 느끼는 게 사람 심리이듯이, 저에게는 ‘죽음’이 그런 위치에 있어요.
먼 길을 돌아왔습니다. (사실은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펑펑 쏟았던 눈물에 대한 변명이 하고 싶었다고나….. -ㅁ-;;) 영화 이야기를 하자면, 요즘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욕망이 들끓기 시작하면서 제가 영화를 나누는 카테고리는 딱 두 가지로 압축됐습니다. ‘잠시나마 현실을 떠나게’ 해주거나, ‘내 발이 현실을 딛고 서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거나. UP은 환타지 어드벤처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에 어울리지 않게 후자 쪽입니다. 이야기의 도입부분은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오지요. 오 마이 갓. 처음부터. 강하게 한 방 때려주는. 가슴 시린 이별 이야기. 하나.
![UP! E2120 19 [UP] 헤어짐에 관한 교과서](http://blancat.kr/wp-content/uploads/2009/08/E2120-19.jpg)
픽사와 디즈니의 합작 영화 UP
삶이 happily ever after로 끝나길 소원하는 이에게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이별’의 존재를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이 잔인함.
그리고 알록달록 예쁜 장면과 대비되어 더욱 가슴 시린 헤어짐
이 영화, UP은 이별의 단계에 대한 교과서입니다. 외로운 독거노인의 생활에 귀여운 꼬맹이가 끼어들면서 생기는 유쾌발랄하기만 한 장편 애니메이션…이라고만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영화는 시종 밝고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세상과 모험을 그리지만, 결코 유쾌하지도 않고 기분이 UP되는 일도 없습니다. 어지간한 용자가 아니고서야 결코 마주할 수 없는 헤어짐을 정면으로 비추고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외면, 미련, 집착을 거쳐 인정, 수용의 단계까지의 이별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예쁘게 포장해 냅니다. (아마도 이게 픽사의 제일 큰 강점이라면 강점)
그래서 아마 영화를 보는 내내 그렇게 울었나 봅니다. ‘슬프다’라기 보다는 ‘안타까움’이 컸던 것 같아요.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를 보고 집에 들어가서 마주친 다큐멘터리가 ‘존엄사’에 관한 것으로, 이별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어요.)
![이 나가사키 wopark 40154326 660x465 [UP] 헤어짐에 관한 교과서](http://blancat.kr/wp-content/uploads/2009/08/wopark_40154326-660x465.jpg)
이 나가사키, M.I.L.K 사진공모전의 'LOVE' 부문 최우수작
이 사진은 사진작가 이 나가사키가 찍은 사진으로 M.I.L.K(Moments of Intimacy, Laughter and Kinship의 약자) 사진 공모전에서 ‘LOVE’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작품이예요. 예전에 선물받았던 작은 사진집에서 만난 이후로 제 감수성에 큰 변화를 가져다 준 사진이기도 합니다. UP을 보면서 내내 이 사진을 떠올렸던 것은, 또렷해지는 ‘끝’ 앞에서도 손을 맞잡을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런 삶의 경이로움때문이었을 거예요.
우리는 모두 그렇게 살아가고, 저도 그렇게 살아가겠죠. 봄이 오고, 또 가는 것처럼요.